[행복한동행 3월호] 행복의 주인공은 나야!

어르신들은 자식의 행복이 곧 당신의 행복이라 여기신다. 
어르신들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 드리기 위한 여정. 
무대 아래에서 박수치는 조연이 아닌 
어르신들의 이름이 주인공으로 새겨진 ‘우리들의 이야기’를 새겨나간다.



어르신들의 행복 찾기 

봄의 기운은 추위를 뚫고 어김없이 우리들 곁으로 오고 있다. 봄에 어울리는 행복한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의 전시회를 찾았다. 그림을 보고 있으니 그림을 그릴 때 작가의 마음이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2023년 3월 미술치료 시간.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에바 알머슨의 얼굴 도안에 알록달록한 꽃무늬 문양을 머리에 붙이고 볼에 발그레한 연분홍 색깔을 입히고 나니 그림 속 행복한 미소는 어르신들의 입가에 그대로 전해져 어르신들의 미소가 되었다. 

그렇게 그려진 어르신들의 그림은 살아온 삶이 서로 다르듯 닮았지만 다른 표정들로 한쪽 벽에 걸려 있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가요?” 복지사 선생님의 질문에 “아들 낳았을 때요”, “자식들 태어났을 때요”, “손주들 낳았을 때요” 

어르신들이 갖는 행복의 기억은 대부분 자녀인가 보다. 정작 자신만의 행복한 시간은 없고 자식들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시는 나의 어머니, 아버지들. 그분들을 위해 나는 무엇으로 행복을 찾아 드릴 수 있을까? 자식이 아닌 나는 그분들께 큰 행복이 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어르신 자신을 위한 작은 행복이라도 찾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싸랑해요’ 할머니와의 만남 

할머니 한 분이 뒷짐에 비닐봉지를 들고 뚜벅뚜벅 불편한 걸음을 걷고 계신다. 이분은 우리 센터를 이용하시기 전까지 동네 의원을 매일 내 집처럼 다니셨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병원에서 꼭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기에 징검다리 센터 이용을 하시게 되었다. 이날도 센터에서 가까운 의원과 약국을 들러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하시던 길이다. 좀처럼 누구 말을 들으시는 분이 아니신데다 치아가 약하셔서 음식물도 최대한 잘고 무르게 만들어 드려야 드실 수 있는 분이기에 신경을 보다 많이 써야만 했다. 그러나 왜소하지만 목소리가 우렁차신 그분의 장점이 센터의 인사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했다. 

“싸랑해요”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분의 독특한 발음에 우렁찬 목소리는 센터의 인사법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들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밥은 딱딱해도 안 되고 너무 질어서도 안 된다. 질어지기 직전의 딱 그분만이 만족해하실 질기를 찾는 일이 며칠째 진행되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던 어느 날 어르신의 식사 모습을 빙 둘러서서 지켜보던 우리들의 얼굴에 마침내 미소가 번진다. 다 드시고 만족스런 표정으로 우리를 향하여 짧고 굵게 한마디를 하신다. “찾았구나! 고맙다!” 아무래도 이분은 우리가 무엇을 고민했고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를 아시는 듯했다. 그 후로 그분은 매일 센터를 오시게 되었고 우렁찬 인사 소리는 센터에 활력을 불어넣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넘어지셔서 요양병원으로 옮기셨고 그것이 우리들과의 마지막이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헤어질 때는 인사 없이 헤어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갑자기 찾아온 이별이지만 여전히 그분의 우렁찬 목소리는 다른 분들의 목소리를 빌어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 ‘하나 둘 셋, 싸랑해요!’ 


어르신으로부터 배우는 지혜 

회사 근무복 차림에 어깨 쪽 포켓에 전문가용 연필이 꽂혀 있는 모습으로 한 분이 들어오셨다. 한눈에 봐도 젊고 샤프한 이미지인데 71세의 3등급 남자 어르신이다. 기계공학을 공부하셨고 엔지니어로 평생 일하셔서 그런지 책상이 비뚤어지거나 바닥에 휴지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분이다. 그분의 수고로 책상과 의자는 항상 흐트러짐 없이 정렬되어 있으며, 휴지통은 항상 비워져 있고 먼지는 바닥에 쌓일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오죽하면 직원인지 헷갈려 하시는 분이 계실 정도였다. 그런데 그분도 한 가지 단점이 있으니 바로 목욕을 안 하시는 것이다. 

정작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해야 하는데 집에서도 센터에서도 절대 자신의 몸을 남에게 허락하지 않으신다. 수염은 몇 주째 길러져 덥수룩하고 머리는 서로 엉겨 붙어있고 당연히 속옷도 오랫동안 갈아입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억지로 목욕을 하려 하면 크게 화를 내시는데다 젊은 남자 어르신이라 남자 요양선생님도 어려워하신다. 

고민에 빠진 직원들이 회의를 한다. 목욕은 고사하고 면도나 샴푸라도 할 수 있는 묘안이 무엇이 있을까? 이때 원장님이 거울 하나를 들고 오셨다. 원래 거울은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우울해 할 수 있어서 노인들에게는 선호하지 않는 물건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센터에서도 세면장 외에는 거울이 비치되어 있지 않다. 다행히 우울감이 없는 분이라 거울을 비춰드렸고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그분은 거울 속 오차(?) 많은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곤 당황해하신다. 그때 원장님의 나지막한 한마디 “어르신 면도 좀 하시는 거 어떠세요?” 그 길로 요양사 선생님 손에 이끌리어 아이처럼 목욕실로 들어가신다. 말끔히 정돈된 머리와 얼굴을 다시 한번 거울로 비춰드리면 깔끔함에 만족해 하시며 다시 책상줄을 맞추고 휴지통을 비우신다. 

단순하고 쉬운 방법으로 한분 한분에게 가장 적합한 솔루션을 찾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큰 거울은 자신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자칫 덥수룩한 수염도 멋져 보일 수 있으니 가급적 작은 거울로 지저분해진 부분만 비춰드리는 지혜를 배워본다. 


대성공을 이루어 낸 동아리 활동 

봄맞이 문화행사로 무엇을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코로나19는 우리들의 발목을 묶어두었기 때문에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민한 끝에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고 태권도반, 뜨개질반, 미술반, 합창반, 난타반으로 나눠 어르신들이 원하는 반으로 편성하여 매주 1회씩 진행하였다. 연초부터 시작한 동아리 활동은 5월 문화행사 때까지 이어졌고 문화행사는 학창시절 발표회를 모티브로 해서 모든 어르신들이 교복을 입고 직접 꾸민 공연과 전시로 진행되었다. 행사는 가족들의 큰 지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참여하신 어르신들에게도 도전이었고 동시에 큰 보람을 갖게 한 시간이었다. 

동아리 활동이 처음부터 호응을 받은 것은 아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부터 인지가 떨어진 어르신들이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의견도 있었고, 매주 지속적으로 진행하여야 하는 부담감과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흥미가 없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본래의 업무도 바쁜데 매주 동아리 활동 준비까지 해야 하는 직원 선생님들의 고충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5월 행사를 통해 대성공을 이루어냈고 이후 동아리 활동은 우리 센터만의 특성화 프로그램이 되었다. 동아리 활동은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일회성이 아닌 연속성을 갖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매주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감동으로 전해진 합창단 

동아리 활동에서 주목하여 발전시킨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합창이다. 센터개원 초기 EBS에서 방영한 ‘메모리즈 합창단’ 프로그램의 일부분을 우리 센터에서 촬영을 했다. 인지가 떨어지고 목소리는 노쇠했어도 직접 부르고 참여하는 음악프로그램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의미 있는 노래를 고르기 위해 수 많은 노래들을 찾아 들으며 드디어 두 개의 곡을 선정하였다. 첫 번째 곡은 ‘천개의 바람이 되어’이고 다른 하나는 ‘오 해피데이’이다. 젊은 사람도 따라 부르기 힘든 노래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노래를 좋아하는 많은 어르신들이 있기에 믿고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음악을 전공한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부르기 쉽게 편곡하고 음역대를 높지 않게 조정하고, 박자 맞추기 연습을 위해 매일 박자 박수치기를 하고, 빠르기 조절을 위해 느리게 불렀다가 빠르게 불렀다가를 수없이 반복해 가며 어르신들이 부르기 가장 알맞은 노래로 만들어 갔다. 한발 더 나아가 이 노래가 갖는 의미를 알려드리려 노력하였다. 인지가 좋으신 어떤 어르신이 “첫 번째 노래는 죽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 아녀?” 하며 물으신다. 왜 죽은 사람의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거냐며 역정을 내신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노래에 담아 부르는 것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는 말로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살아 있는 지금 노래로 말해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원장님의 이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부르려 노력하게 되었다. 그렇게 약 5개월간에 걸쳐 두 곡을 맹연습하였고 연말 문화행사 때 큰 울림을 가져다 주었다. 몇 달 동안 연습한 이유 때문인지 어르신들은 오히려 담담히 부르셨지만 합창을 듣는 선생님들과 가족들에겐 큰 감동이 전해진 시간이었다. 


어르신이 주인공인 이야기 만들기 

어르신들과 만남의 인사는 있지만 이별의 인사는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예고 없이 헤어질 때가 올지라도 오늘의 행복을 위해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겠다. 무대 아래에서 박수치는 조연에서 벗어나 직접 무대를 밟고 참여하는 비로소 어르신들이 주인공이 되는 그런 활동을 끊임없이 제공해 드리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나에게 처음 던진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그분들을 위해 나는 무엇으로 행복을 찾아 드릴 수 있을까?’ 에바 알머슨의 전시관 입구에 붙어있는 글귀가 생각난다. ‘주인공은 너야’. 어르신들의 행복은 자신이 주인공으로 느껴질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어르신들 이름이 주인공으로 새겨진 우리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 그 일을 지금부터 내가 해야겠다. 


출처 : <노인장기요양보험 웹진 2024년 3월호>

 장기요양보험 행복한동행

댓글

가장 많이 본 글